스토리1
세상의 사나이들은 기둥 하나를 세우기 위해 산다. 좀더 튼튼하고 좀더 당당하게 시대와 밤을 찌를 수 있는 기둥 그래서 그들은 개고기를 뜯어먹고 해구신을 고아먹고 산삼을 찾아 날마다 허둥거리며 붉은 눈을 번득인다. 그런데 꼿꼿한 기둥을 자르고 천년을 얻은 사내가 있다 기둥에서 해방되어 비로소 사내가 된 사내가 있다. 기둥으로 끌 수 없는 제 눈 속의 불 천년의 역사에다 당겨놓은 방화범이 있다. 썰물처럼 공허한 말들이 모두 빠져나간 후에도 오직 살아 있는 그의 목소리 모래처럼 시간의 비늘이 쓸려간 자리에 끔지막하게 찍어 놓은 그의 발자국을 본다. 천년 후의 여자 하나 오래 잠 못 들게 하는 멋진 사나이가 여기 있다.
문정희 시인
김란영 - 모닥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