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맹(會盟)과 패자(覇者)
춘추오패(春秋五覇)를 보면 회맹과 패자란 말이 나옵니다.
춘추시대 군웅이 할거하면서 많을 때는 100여국(國)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이들의 나라들은 이합집산의 약육강식을 하게 되는데
이때 세력이 강했던 다섯 나라를 일컬어
춘추오패라고 불으고 있습니다.
춘추오패는
제나라의 환공, 진나라의 문공, 초나라의 장왕,
오나라의 왕 합려, 월나라의 왕 구천을 가리키며,
기록에 따라서 진나라의 목공, 송나라의 양공
또는 오나라 왕 부차 등을 꼽는 경우가 있다.
(아래 지도 참조)
춘추시대는 각국의 형편에 의거 인접 국이나 강국들과
친선관계를 유지하면서 회맹이 이루어젔습니다.
회맹(會盟)이란 제후 혹은 그 사신이나 유력자를 중심으로
서로 만나서 맹약하는 것을 이릅니다.
회(會)는 때와 장소를 미리 정하여 모이는 회합이며,
맹(盟)은 소의 왼쪽 귀를 잘라서 그 피로 조약서를 쓰고
회합한 제후가 피를 마시는 의식을 말한다고 합니다.
이처럼 모임을 갖는 회맹의 맹주를 패자(覇者)라고 합니다.
참고로 국어사전을 보면 패자를
(1) 중국 춘추 전국 시대, 제후의 우두머리.[역사]
(2) 무력이나 권력을 이용하여 천하를 다스리는 사람.
(3) 어느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
회맹의 성격은 초기에는 패자가 주(周) 왕실에 위임이 되어,
국제 친선·가족 도덕 등 중원 사회의 질서 유지
목적이었지만 차차 강자를 중심으로 하는 공수(攻守)동맹으로
변화해 갔다고 합니다.
이시기에 생겨난 고사가
와신상담(臥薪嘗膽)과 오월동주(吳越同舟)가 되겠습니다.
와신상담(臥薪嘗膽) 고사(위키백과 참조)
춘추시대,
양쯔강 하류에 서로 적대적인 吳나라와 越나라가 인접하여
세력다툼을 하고 있었는데,
양국의 바로 서북쪽에 위치한 楚나라가
오나라의 수도를 정복하고 그들을 거의 멸망시킬 뻔한
사건이 있었다.
(吳나라는 진나라(秦)의 지원으로 가까스로 멸망은 모면함)
楚나라는 강국이 바로 옆에 있는 것을 꺼려
월나라더러
吳나라를 치도록 사주한 바람에 그들은 항상 전쟁을 벌였다.
그러던 중, 越왕 구천이 병법의 대가인 손무가 오를 떠나고,
吳왕 합려(闔閭)가 주색에 빠진 틈을 이용해 오를 공격했다.
越나라 구천(勾踐)의 공격을 받고 반격해 온
吳왕 합려(闔閭)와 세자를 죽이고 吳에 막대한 손실을 입혔다.
둘째 왕자 부차(夫差)는 오왕이 되자 지난날의 치욕을 갚기위하여
매일 장작더미 위에서 자면서 부하들 더러 인사 대신에
구천에게 원수 갚을 것을 각인시키도록 했다.
夫差는 오자서 등의 도움으로 수 년간 복수를 다짐하고
부국강병을 이룬 끝에,
오나라는 월나라를 정벌하여
월왕 구천(勾踐)을 생포해서
吳로 압송해와 합려의 묘지기를 시키고
왕후와 함께 머리를 깍는 삭발의 치욕을 주는 등,
월나라를 철저히 파괴하고 돌아갔다.
그 후 수 년간, 吳나라 재상 오자서가
勾踐의 복수 의중을 알아채고 그를 죽이려 했으나
구천은 부차에게 갖은 노력을 다해 신임을 얻게 되어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초나라를 경유해 越나라로 돌아갔다.
그 후,勾踐은 곰의 쓸개를 핥으면서 복수를 다짐하고,
밖으로는 부차에게 경국지색이라고도 불리는 서시를 보내는 등,
온갖 진귀한 조공품이며 군대를 지원해 주면서
진실한 신하인 채 20년을 기다리면 서 복수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러던중 夫差가 濟나라와 楚나라 양강(兩强)을 굴복시키고
또 다른 중원의 강국인 진(晋)까지 정복하여
천자의 자리에 오르려는 틈을 타 오국을 기습, 라오허 산에서 화공과
수전의 대승으로 吳나라를 패배시켰다.
이후 구천은 夫差를 죽이고 吳국을 합병하였다.
이 고사로부터 와신상담은
'장작에 누워 복수를 다짐하고
곰의 쓸개를 핥으며 노력해서 고난을 이겨낸다'
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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